포토그래퍼 유환희가 흑백 필름으로 포착한 매혹적인 순간들:: 로모 LC-A 120 & 레이디 그레이 B&W 120 ISO 400

서울의 포토그래퍼 유환희 @hwanheeryu 는 거리를 거닐며 복합적인 느낌을 사진을 통해 보여줍니다. 작업물을 통해 자신과 비슷한 결을 관찰하며 그것을 끄집어내어 표출합니다. 이번에 그가 로모 LC-A 120과 레이디 그레이 B&W 120 ISO 400 필름을 사용해 그만의 느낌을 선사했습니다. 그의 멋진 사진을 감상하고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 유환희 , 로모 LC-A 120 , 레이디 그레이 B&W 120 ISO 400

안녕하세요 자기소개와 어떻게 사진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말씀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사진가 유환희입니다. 저는 늘 떠돌며 관찰합니다. 사진의 시작은 여행이었어요. 제 지나간 시간은 대부분 여행으로 채워져 있고 그 시간 내내 떠도는 말들을 들어주는 건 사진이 유일했습니다.

© 유환희 , 로모 LC-A 120 , 레이디 그레이 B&W 120 ISO 400

당신의 사진 스타일을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걷다보면 ‘저건 왜 저기에서 저러고 있나?’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저는 그런 걸 담습니다. 그런 것들은 산에도 있고 거리에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도 있고 어떤 사물에게도 있어요. 그래서 저는 원경, 근경, 인물, 정물, 거리 할 것 없이 모두 담아냅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은 어떤 날씨 아래 있어요. 어떤 날씨는 제게 이런 느낌입니다. ‘여기 좀 있다가’.

작업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나와 결이 같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합니다. 이 땅에는 나와 닮은 것들이 어딘가에 숨겨져 있어요. 관찰을 통해 그것을 끄집어내는 것이 제 일입니다.

© 유환희 , 로모 LC-A 120 , 레이디 그레이 B&W 120 ISO 400

당신의 사진에서 날씨, 특히 안개는 단순한 장치 이상의 역할을 합니다. 어떤 의도나 기획을 가지고 촬영을 하나요?

저는 날씨가 이 땅에 머무는 모든 것들에게 가장 중요한 하나의 사건이라고 생각해요. 날씨는 삶의 방식을 강제하고 세상을 느끼는 온도를 결정합니다. 그것은 직접적으로 피부에 닿기도 하고 간접적으로 어딘가에 스며 있기도 하지요. 제가 날씨를 집요하게 관찰하는 건 바로 그것 때문이에요.

그중에서 안개는 대상을 고립시킵니다. 대상은 그 고립을 통해 감추어진 존재성을 드러내지요. 이를테면 안개 속에서 숲은 나무들이 되고, 나무들은 나무가 됩니다. 도시에 짙게 자리 잡은 안개는 그래서 특별합니다. 도시에 머무는 인간은 자신의 존재성을 드러낼 일이 없어요. 그런데 안개가 도시라는 배경을 지우면 개별적인 하나의 사람이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더 나아가 아주 짙은 안개가 그 사람의 피부와 살 마저도 녹여버리면 그 안에 감추어진 새하얀 뼈가 드러납니다.

Lomo LC-A 120을 사용해본 느낌은 어땠나요?

우선은 상당히 가볍습니다. 그냥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바로 꺼내어 쓸 수 있어요. 저는 평소에 꽤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다녀서 제게는 로모 LC-A 120 이 마치 아무것도 들고 다니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기계는 단순하고 직관적입니다. 기계의 조작을 통해 무언가를 고민하게 하는 게 아니라 셔터를 누르는 행위의 앞과 뒤 에 더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들어요. 무언가를 제한한다는 것은 제한할 수 없는 무언가를 찾게 만드는 법이니까요.

© 유환희 , 로모 LC-A 120 , 레이디 그레이 B&W 120 ISO 400

중형 포맷 필름의 특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마음가짐이 다릅니다. 어쩌면 그게 가장 크고 중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해요. 저는 보통 거리에서 작업을 하기에 끊임없이 움직입니다. 길을 가다가 찍고 싶은 것이 생기면 고민하지 않고 바로 - 때로는 생각보다 먼저 셔터를 누르는 편인데, 불확실한 12컷은 찍는 행위에 대한 고민을 강제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촬영 자체가 Lomo LC-A 120의 무게만큼 가볍지는 않았어요. 첫 셔터를 누르기까지 꽤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리고 셔터를 누르는 순간에도 이것이 충분히 타당한 것인지 멈춰 생각하게 되더군요. 그 자리에서 설득이 되지 않아 그 주변을 한바퀴 돌고 다시 그 자리에서 섰던 적도 있었습니다.

이번 촬영의 주제는 무엇인가요?

첫 번째는 매일 마주하는 일상의 공간을 Lomo LC-A 120이라는 카메라가 가진 특성을 담아 표현하는 것 이었어요. 이 카메라는 상당히 단순한 조작성을 가지고 있어요. 사용자가 조작할 수 있는 버튼이 별로 없어요. 셔터 버튼, 필름 감는 버튼, 다중 노출 선택 버튼, 4가지 범위의 거리 조절 버튼 뿐이니까요. 한 장의 사진에 이 모든 것을 담아보고 싶었습니다. 같은 풍경을 같은 자리에서 0.6 / 1 / 2.5 / 무한대 거리로 총 4번 셔터를 눌러 핸드 헬드로 촬영했어요. 이 작업을 통해서 일상에서 내 눈이 향하고 있는 초점이 어디쯤인지 생각해보려 했습니다.

두 번째는 안개 속에서 짧게 만난 풍경입니다. 저는 사실 안개 속에서의 작업을 흑백으로 담는 경우는 드문데, 레이디 그레이 B&W120 ISO400이 가진 질감과 톤이 제가 자주 만나는 안개를 어떤 식으로 표현하는지 궁금 했어요. 이 작업은 감추어진 것 그 너머 어딘가로 향하는가에 대한 물음이기도 합니다.

© 유환희 , 로모 LC-A 120 , 레이디 그레이 B&W 120 ISO 400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과 그 이유는?

어느 하나는 분명히 초점이 맞은 건데, 어느 하나도 초점이 맞지 않은 것 같지요. 도시에서 우리의 시선은 늘 어딘가로 향해있지만, 그 어디에도 초점이 맞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도시는 기본적으로 원 경, 근경할 것 없이 지나치게 많은 사건들이 중첩해 있는 상태라 우리의 시선도 초점을 맞춰야 할 자리를 찾지 못하는 것이지요. 출근길을 생각해 보세요. 빌딩, 지하철, 거리와 같은 배경에 수백 명의 사람이 내 눈앞을 지나갑니다. 모두 각각의 사건들이지요. 그런데 그 어떤 것도 우리는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합니다. 분명 내 눈앞에 있었지만, 보았다고 할 수 있는 것 일까요?

올해 계획하고 있는 전시나 프로젝트가 있나요?

올해는 빈도는 줄이고 정교하고 느슨하게 작업을 하려 합니다. 사색하고 정리하고 읽고 쓰는 일의 부피를 늘리고자 해요. 날이 풀리면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에게도 한 발 더 깊게 들어가려 합니다. 표면을 핥는 일은 이미 너무 많이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커뮤니티와 공유하고 싶은 조언이나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Lomo LC-A 120 그리고 로모그래피의 필름들과 함께한 시간은 상당히 짧았지만, 그 짧은 시간동안 느꼈던 것은 이 카메라와 필름에는 상당히 틈새가 많다는 것이었어요. 그 틈새를 가만히, 오래, 그리고 자주 살피셨으면 좋겠습니다.


사진을 공유해주신 유환희님에게 감사드립니다. 그의 작업이 궁금하시다면 그의 인스타그램 계정 을 확인해보세요.

작성자 Julien Matabuena 작성일 2024-03-01 카테고리 #gear #사람 #장소

Mentioned Product

Lomo LC-A 120

Lomo LC-A 120

Phoblographer Editor's Choice Award 수상작 "최고의 거리 사진 카메라: 필름 또는 디지털. 이보다 뛰어난 것은 거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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