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주를 하며 작업한 놀라운 프로젝트: 김물길 작가님의 '365 ART ROAD'

무려 673일동안, 22개월간 46개국을 넘나드는 세계일주를 하며 400여장의 그림을 그린 환상적인 예술가 김물길 작가님과의 인터뷰를 읽어보세요. 이름처럼 물길처럼 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김물길 작가님의 ‘365 ART ROAD’ 프로젝트를 소개합니다. 각각의 그림에 감성이 살아있고, 스토리가 담겨있는 그녀의 작품들, 어디에서도 볼 수 없던 살아있는 생생한 그녀만의 여행기를 감상해보세요.

본명: 김수로
작가명: 김물길
국적: 대한민국

2011. 12. 12
365아트로드 세계일주가 시작 된 날이다. 365아트로드란? 약 365일동안 세계여행을 하면서 하루 한장씩 그림을 그린다는 프로젝트. 작업목표는 이동 및 작업을 힘들 상황 등을 고려해 330장정도. 조건은 그릴 것이 없는데 억지로 그리거나, 작업을 못 한 날을 채우기 위해 날짜를 속여 그리지 않는다. 작업 재료는 100% 현지조달.
내가 만나는 세계의 사람들.
내가 느끼는 세계의 풍경들.
내가 발견하는 나의 모습들.
곧 내 인생의 한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기대도 하지만 걱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 여행을 통해 내 삶이 완전히 새롭게 변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이전과 그대로 일 것이라고도 생각하진 않는다. 그냥 이 시간을 내 방식대로 누리고 싶다.
(김물길 작가님의 블로그에서 발췌한 글)

김물길 작가 의 ‘365 ART ROAD’ 중

김물길 작가님, 안녕하세요. 처음에 어떻게 세계일주를 하는 이 ‘365 ART ROAD’ 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습니까?

‘세계일주’라는 꿈을 갖게 된 것은 대학교에 입학하고 해외로 워크캠프와 봉사활동을 하는 기회를 접하면서였습니다. 외국이라는 곳은 당시 정말 저에게 신세계였고, 각자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그들의 다양한 가치관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나라라는 ‘낯섦’이 주는 예민함은 그림을 그리는 저에게 그동안 발견하지 못했던 많은 것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그런 매력에 빠져 처음에는 일주일 일본여행, 한 달 유럽여행. 이런 식으로 단기여행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장기간 계획을 잡아 그림을 그리며 세계를 여행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상상만으로도 황홀한 일이었습니다. 그 꿈같은 일은 나의 간절한 목표가 되었지요.

김물길 작가 의 ‘365 ART ROAD’ 중

그 날 그 날 그림을 그릴 때, 소재는 어떻게 정하셨나요? 재료는 현지에서 마련하셨다고 했는데, 어떻게 구하셨어요?

여행하던 그 나라에서 공책이나 스케치북, 펜 그리고 물감들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을 때는, 구입을 해서 사용한 것이 보통이였지만, 한국을 떠나 첫 여행지였던 미얀마에서는 당장 마땅한 스케치북을 살 상점을 찾지 못해서, 길거리에서 파는 2012년 새해 달력을 사서 그 뒷면에 그림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인도에서는 인도 전통 방법을 시도하고 싶어 실크 천에 천연재료로 작업을 해보기도 했으며, 헤나(henna)재료를 가지고 그리기도 했습니다. 모로코를 여행 할 때는 사하라 사막을 갔었는데, 그 사막모래가 너무 매력적이어서 그 모래를 사용하기도 했고 모로코 카사블랑카 맥주 라벨로 작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쿠바에 있을 때에는 쿠바 수도 아바나의 신문을 모자이크 재료로 사용해 작업을 했기도 했구요.

김물길 작가 의 ‘365 ART ROAD’ 중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여러 나라를 방문하셨는데, 그 이동루트는 어떻게 결정하셨어요? 가장 좋았던 장소 혹은 나라에 대해서 얘기해주세요.

김물길 작가 의 ‘365 ART ROAD’ 중 여행 루트의 일부

처음에는 짐을 줄이기 위해 그리고 히치하이킹과 캠핑에 더 적합한 날씨를 위해 계절 ‘여름’을 따라 여행루트를 계획했었습니다. 그래서 출발당시에도 더웠던 인도를 거쳐, 아프리카대륙으로 그리고 유럽여름에 도착해서 남미를 돌고 북미를 마지막으로 한국에 돌아오는 전체적인 대륙이동을 잡고, 그 다음에 나라들을 선택하여 이동하였습니다. 하지만 출발할 때 계획했던 1년이 2년이 되면서, 제가 유럽에 도착했을 때는 굉장히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남미 파타고니아를 여행할 때도 굉장히 추웠죠.

제가 여행하면서 가장 좋아했던 나라는 ‘마다가스카르’입니다.

처음에 저는 마다가스카르 여행기간을 1달로 잡고 나이로비에서 왕복티켓을 끊었습니다. 1달이면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한 달이 되기도 전에 비자를 1달 더 연장했고, 돌아가는 편도 비행기 표도 과감하게 포기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다가스카르에서 총 2달을 있었습니다.

다시 찾고 싶은 나라로 만들고, 나를 더 붙잡아 두었던 그 매력이 무엇이었을까. 항상 그렇듯이, 내 여행의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습니다.

김물길 작가 의 ‘365 ART ROAD’ 중

유럽이나 미국과 같이 현지에 살거나 여행하는 외국인들이 그리 많지 않은 곳이어서 그런지, 여행자들에 대한 현지인들의 관심은 컸습니다. 그리고 그 관심은 호기심이었고, 그 호기심은 깨끗하고 순수했습니다. 그래서 말라가시어, 프랑스어(예전에 프랑스 식민지였기 때문에)밖에 못 쓰는 사람들이었지만, 언어적으로 크게 불편함을 느끼질 못할 정도로, 그들은 친절했고 열심히 도와주려했습니다. 마다가스카르에서 인터넷을 자주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아, CouchSurfing(홈스테이 국제네트워크)을 거의 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따뜻한 현지인들의 도움으로 숙박을 해결 한 적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마다가스카르에 있을 때에 마음에 드는 핸드메이드 가방을 잔뜩 사서 장사를 하기위해 마다가스카르에서 이탈리아 밀라노로 보냈었습니다. 제가 아프리카 여행을 마치고 유럽에 도착했을 때, 그 가방으로 밀라노 예술대학근처에서 길거리 장사를 했었습니다. 5일간의 장사 기간 동안 그 가방은 다 팔렸고, 덕분에 여행자금에 보탬이 되었던 재미있는 추억이 있기도 해서, 마다가스카르는 저에게 특별한 나라입니다.

김물길 작가 님이 밀라노예술대학 근처에서 마다가스카르가방 길거리장사하는 모습

작가님 그림을 보면, 항상 그 사람, 동물, 장소, 물건의 스토리가 담겨있는게 느껴집니다. 가장 인상깊거나 흥미로운 스토리를 얘기해주세요.

‘마음의 크기’ Nairobi, Kenya (2012. 05. 01)

세상의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를 나에게 심어준 경험. 그 파란만장했던 킬리만자로 트레킹(trekking)의 추억을 남겨준 탄자니아 모시에서의 마지막 날을 보내고, 저는 아프리카의 뉴욕이라 불리는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로 향했습니다. 달리고 달린 버스는 국경을 넘어 저녁 9시쯤 나이로비에 도착했죠.

혼자 남게 된 나이로비의 밤거리. 나이로비는 아프리카의 다른 도시에 비해 크고 발전한 대도시이지만 그만큼 위험하기로도 유명한 곳입니다. 그런 나이로비에서 특히나 큰 배낭을 앞뒤로 메고, 어리둥절 헤매는 동양 여자아이가 얼마나 눈에 띄었을까요. 하이에나처럼 다가와 주렁주렁 말을 걸어대는 사람들을 피해가며 불안감에 가득 차 허둥지둥 걸어가고 있을 때, 한 여자 분이 나의 팔을 잡으셨습니다. 한 곱슬머리 흑인 아줌마였죠.
“혼자예요? 여기 위험한데, 여기서 혼자 뭐해요. 여기 내 옆으로 와서 서 있어요. 거기 그렇게 돌아다니면 이 사람들 계속 괴롭힐 거예요.”

그녀의 이름은 로즈메리. 그녀는 함께 있던 그 분의 친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흔쾌히 숙소 찾는 것을 도와주셨지만 안타깝게도 시간이 너무 늦어 이미 마땅한 숙소가 없었습니다.
“오늘 밤 너무 늦었으니, 괜찮다면 우리 집에서 하루 밤 보내고 가도 돼요.”

그 진심이 묻어나는 말에 나는 마음의 경계를 허물고 함께 그녀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집은 나이로비 시내에서 꽤 외곽에 위치한 허름하고 가난한, 일종의 ‘판자촌’에 있었습니다. 들어서니 보이는 것은 부엌 겸용의 작은 방 한 칸. 그 작은 방에 아이들 5명이 오글오글했습니다. 잠들기 전, 아주머니는 좁은 침대 위에서 내 손을 잡고 기도를 해주셨습니다. 우리는 작은 침대에서 3명이 새우잠을 자고 나머지 식구들은 간이침대에서 역시 쪼그려 잤습니다. 화장실은 공용 화장실이 하나 있지만 밤에는 밖이 너무 어두워 나가지 못하고 방에 들여놓은 플라스틱 통에 소변을 보아야했어요. 그들에게 큰 불편을 끼치게 되었지만, 모든 게 그저 감사하고 고마울 뿐이었습니다. 원래는 날이 밝으면 시내에 있는 숙소를 찾아가려고 했으나, 아침에 내가 있고 싶은 만큼 지내도 된다는 따뜻한 그녀의 배려와 낯선 외국손님인 나를 너무나 반갑게 좋아해주던 5명의 꼬마 소녀들 덕분에, 더 있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방 안에는 시도 때도 없이 바퀴벌레가 돌아다니고, 아침에 일어나면 좁았던 침대 탓에 허리가 뻐근하고, 대야에 물을 받아 샤워를 하고 푸세식 화장실을 써야했지만, 그것들을 무시할 수 있게 한 ‘좋은 가족들’이 있었습니다. 사랑스럽고 앙증맞은 아이들, 노래를 틀어놓고 춤을 보여주는 귀여운 아이들이 내 마음에 자리를 잡았죠.

로즈메리의 조카 ‘로즈’

로즈메리의 딸 ‘티나’. 그리고 그녀의 조카인 ‘로즈’와 ‘가트린’. 올해 6살이 된 티나는 호기심이 가득하고 끼가 넘치는 꼬마숙녀였습니다. 빨간 바지에 꽃무늬 코트, 예쁘게 땋은 머리, 그리고 구슬같이 커다란 두 눈은 그 어두운 집안을 밝히는 빛이라는 생각마저 들게 했습니다.

로즈메리의 딸 ‘티나’

내가 꺼내 든 카메라에 관심을 보이는 티나.
“티나, 내가 사진 찍어 줄게. 저 앞에 서봐.”

그 귀여운 꼬마소녀는 신나서 포즈를 잡았습니다. 부끄러움 하나 없이 모델처럼 포즈를 취하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예쁘고 재미있던지 나는 이 꼬마를 그릴 수밖에 없었어요. 이제와 생각해보니, 이 그림은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보다 당시 티나에게 선물 했으면 더 좋았을 뻔했습니다.

로즈메리 아줌마는 낮에는 나를 데리고 시내구경도 시켜 주고, 성당친구들도 소개해 주셨습니다. 하루는 아줌마의 한 부자 친구네 집을 방문했습니다. 로즈메리가 저에게 말하길,
“혹시 이 친구에게 네가 이 집에서 좀 지내도 되는지 물어볼게. 이 집이 너한테 더 편할 거야.”

그 친구네 집은 정말 좋은 ‘큰 집’이었습니다. 커다란 정문이 우뚝했고, 집 안에는 고급 가구와 좋은 텔레비전, 컴퓨터, 가정부까지 있었어요. 친구 분은 한국에서 온 친구라며 저를 굉장히 반갑게 맞이해 주셨습니다. 오후 시간에는 그녀의 아들 ‘캔’은 나와 비슷한 또래로, 굉장히 친절하고 재미있는 친구였습니다. 캔은 나에게 먼저 말을 했습니다.
“수로. 로즈메리 아줌마네 집이 좁은 거 알아. 우리 집은 넓으니 우리 집에서 며칠이라도 머물다 가는 건 어때?”

로즈메리는 그녀의 친구에게 나를 이곳에서 좀 머물게 해 줄 수 있겠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부자 친구는 대답했습니다.
“오, 그건 좀 힘들겠는데. 나도 네가 우리 집에서 쉬면 좋겠지만… 지금은 누군가를 호스트할 공간이 마땅치가 않아. 미안해.”

그때 그녀 뒤에 서 있던 아들 ‘캔’과 눈이 마주쳤죠. 그때 그 아들이 나한테 보냈던 그 눈빛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의 눈에는 어머니에 대한 실망과 부끄러움이 담겨 있었거든요. 돌아가는 길, 로즈메리가 나한테 말했습니다.
“수로야 괜찮니? 좋게 생각하자. 나는 너와 더 같이 있을 수 있게 돼서 기뻐.”

나는 로즈메리와 팔짱을 끼고 기분 좋게 ‘우리의 판잣집’으로 향했습니다. 로즈메리가 자기의 집이 넓어서 나를 재워주는 것이 아닐테지요. 로즈메리와 그 친구의 차이는 무엇인가? 이것은 집의 크기 차이가, 가지고 있는 돈의 차이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의 크기 차이였습니다.

로즈메리아줌마와 소녀들과 함꼐

673일동안 세계일주를 하려면, 자금이 많이 들었을텐데, 약간은 조심스러운 질문이지만, 어떻게 돈을 마련하고, 오랫동안 여행을 하셨나요?

마음은 언제든지 떠날 수 있었고, 몸은 아픈 데 없이 건강했으며, 대학교는 언제든지 휴학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 바로 여행자금, ‘돈’이었습니다. 1년이 넘는 여행에서 계속 지출만 해야 할 텐데, 그 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나는 부모님의 도움을 받고 싶지 않았습니다. 사실 제 여행을 뒷받침해 줄만큼의 넉넉한 형편도 아니었구요. 이제 저도 다 컸으니, 제 꿈에 대한 준비 또한 제 스스로 하고 싶었습니다.

우선 대학교 2학년까지는 졸업한 고등학교에서 입시생 실기보조강사 알바를 했습니다. 그리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모아둔 적은 돈으로 펀드도 해 봤지만 큰 성과는 없었다. 본격적으로 돈을 벌어야 했다. 대학교 3학년을 마치자마자 휴학계를 냈고 작은 의류회사에 들어가서 디자이너 인턴으로 일을 했습니다. 그렇게 10개월을 일했지만 여행자금을 채우기엔 턱 없이 부족했다.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일 년 동안 시급이 세다는 벽화, 디자인 외주 등의 알바들을 찾아다니며 돈을 열심히 모았습니다. 악착같이.

그렇게 약 3년 동안 넉넉하진 않았지만 약 2,500만원 정도의 여행자금을 모을 수 있었습니다.

작가님 작품 중에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 어떤 작품입니까?

여행 중 제가 좋아하는 그림 2개입니다.

The sea in a Blue-footed Booby, 2013, Galapagos, 21×30cm, Watercolor & pen on paper, 김물길 작가

제가 에콰도르 갈라파고스에 갔을 때에 너무나도 독특한 새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정말 페인트로 특별히 칠해놓은 것 같이 발만 파란색을 띄고 있는 새였습니다. 그 모습이 마치 발에 푸른 바다를 담은 듯, 파란 하늘을 담은 듯하여, 그 모습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동물과 자연을 담은 작업 중 가장 마음에 듭니다.

Che guevara, 2013, Cuba, 27×38cm, Cuba newspaper on paper, 김물길 작가

아마 모든 분들이 아실 테지만, 체 게바라입니다. 제가 쿠바에 있을 때에 체 게바라를 스케치북에 담고 싶었는데 그 소재를 고민하다가 쿠바 신문으로 모자이크를 하여 작업을 한 것입니다. 다른 작품은 다시 그리라면 똑같이 그릴 수 있을지 몰라도, 이 작품만큼은 두 번 다시 복제할 수 없는 유일한 것이기에 저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22개월 동안의 세계일주를 마치고 돌아오셨는데,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십니까?

김물길 작가 의 ‘365 ART ROAD’ 중

저의 여행이야기와 그림 작업들을 더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올해에는 제 이야기를 담은 책을 준비중이구요, 전시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여행은 끝이 났지만, 저의 그림그리기는 계속 될 것 이구요. 그것을 나누고 소통하는 일 또한 계속 하고 싶습니다.

이 글의 모든 사진 및 작품의 저작권은 김물길 작가님에게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김물길 작가님의 더 많은 작품을 감상하시려면 작가님의 네이버 블로그 를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작성자 junhahaa 작성일 2014-01-21 카테고리 #lifestyle #artist #waterway #analogue-lifestyle # # # #sooroway #moolgil-kim #travel-artist #365-art-road #3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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