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모아미고스 쥬커맨, 박중하 인터뷰: The Future Is Analogue, T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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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얼마 전 로모그래피 갤러리 스토어에서 ‘잘 찍은 사진에 대한 10가지 오류’라는 흥미로운 주제로 강연을 선보여 주신 쥬커맨, 박중하님은 오랜 시간 기자와 포토그래퍼로서 활동해 왔으며, 현재는 국립 한밭 대학교의 초빙교수이자 게티 이미지 소속 포토그래퍼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아날로그 포토그래피와 로모그래피에 대한 쥬커맨님의 생각이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Self portrait by Jukerman

쥬커맨님에 대해서 간단히 소개해 주세요.
절반으로 접어도 슬퍼 보이는 중년의 서울 남자. 본래 글쟁이라고 불렸을 때 스스로도 자연스럽다고 여겼으나 요즘은 글보다 허섭한 사진들을 양산함에도 간혹 그 사진이 좋다고 여긴 믿기지 않을 사람들이 내놓는 재화로 생계를 유지 중. 그런데 내 사진을 도대체 왜 사는 걸까?

왜 쥬커맨 Jukerman 이라는 닉네임을 갖게 되셨나요?
밖에 나가서 공부할 때 적당한 이름을 짓다 보니 그리 되었다. 약칭으로 Jukie라고 하는 게 더 익숙한데, 언뜻 디스크 자키처럼 보이기에 그것이 직업인가 하는 사람도 있고 더러는 약물중독자 Junkie가 아닐까 의심하는 이들도 있다. 심지어는 유태인 가정에 입양된 중국계로 보는 경우도 있었다.

로모그래피 카메라를 처음 접하게 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이십여 년 전엔가 외국의 벼룩시장에서 다루기 쉬울 것처럼 생긴 작은 카메라라서 무턱대고 사버린 게 첫 인연이다. 물론 지금의 영어로 된 이름이 아닌 터라 고장 나서 버릴 때까지 십 년도 넘게 그것이 로모 카메라인지 몰랐다. 지금도 내 LC-A 에 씌어져 있는 LOMO라는 글씨가 러시아어로 보일 때가 종종 있다. 사진 묘하게 나오는 건 본래 싸구려에 고장났기 때문일 거라고 오해했다.

로모 LC-A+ 카메라를 5가지의 단어로 표현한다면?
상상초월, 기대 이하, 기대 이상, 막무가내, 오해만발

Photo by Jukerman

쥬커맨님의 사진을 감상하며 함께 듣기에 좋은 음악 3곡을 선곡해 주신다면?
Sakamoto Ryuichi의 앨범 CASA 전곡(당연히 3곡 이상이다)
Stan Getz와 Kenny Barron의 First Song
Joe Henderson이 연주한 Antonio Carlos Jobim의 Photograph(사실 다른 곡이 더 좋지만 제목이 어쩐지 그럴 싸하게 어울리지 않은가?)

Photo by Jukerman

그동안 촬영했었던 사람들 중 가장 인상깊었던 인물이 있다면?
코 앞에 로모를 들이 댔어도 전혀 눈치 채지 못 했던 노점상 아주머니
언젠가 인상 깊을 거라고 느껴질지도 모를 아직 만나 보지 못 한 사람들

Photo by Jukerman

평생 사진으로 꼭 담아보고 싶은 한 명의 인물이 있다면?
그 여자(그 남자라고 하는 것 보다는 훨씬 로맨틱하지 않은가?)

Photo by Jukerman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촬영장소가 있다면? 왜 그 장소를 추천하고 싶으신가요?
달리고 있는 지하철 객차 내부: 최소한 100여 가지의 스토리들이 꼼짝 못 하고 내가 내릴 때까지는 기다리고 있기 때문. 더욱이 필요에 따라서 이야기들이 그만큼 또 새로 채워지고 버려지는 곳이니 얼마나 좋은가?

Photo by Jukerman

지금 당장 어디든 갈 수 있다면 가고 싶은 곳은? 또 그곳에 가면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운 좋게 가까이 있는 로모샵에 가고 싶다. 내 여자 친구가 갖고 싶어하는 Love is in the Air를 훔치고 싶어서다.

특히 사진을 많이 찍게 되는 피사체가 있다면?
내 마음을 움직이는 피사체는 단연코 사람이다. 사람이라는 주제가 사진의 처음이자 끝이라고 본다. 더러는 길거리의 빨강 소화전도 좋아한다. 같아 보여도 같은 게 단 하나도 없다. 그래서 볼 때마다 주워 담는다.

Photo by Jukerman

로모그래피 골든 룰 10가지 중 가장 공감하는 룰은 무엇인가요?
난 룰을 싫어한다. 로모그래피에서 가장 싫어하는 것이 골든 룰이다. 단연코 싫다. 그런데 가끔 흉내를 내보기도 한다. 그런 내가 싫다.

로모그래피 카메라 이외에 주로 사용하시는 카메라 3가지를 알려주세요.
3가지를 고르기 전에 조건이 있다. 난 반드시 카메라가 크고 무거워야 마음에 들어 한다. LC-A도 인스턴트백을 붙여야 좋아 보인다. 모순이겠으나 그러하다.
아끼는 카메라는 Nikon의 F3P와 F2이다. 물론 이들 역시 모터드라이브를 달고 있기에 크고 무겁다. 무거운 카메라가 좋은 사진도 나온다고 믿는다. 물론 새빨간 거짓말이긴 하다.

Photo by Jukerman

아날로그 사진에 관한 정보나 팁들은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따로 구하고자 노력하지 않는다. 다만 많이 보고 많이 돌아다닌다. 눈으로 본 것들이 과연 내 사진에서 어찌 보여질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뿐이다. 남들의 조언보다는 직접 겪는 게 이 고집스런 중년 남자에게는 적합한 방식이라고 깨달은 지 꽤 되었다.
덕분에 내게 정보나 팁을 달라고 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엉뚱한 정보를 주어서 곤란에 빠뜨리게 하는 것이 즐거움이다. 한 마디로 참 못 됐다.

해외 포토그래퍼들 중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Jim Marshall. 특별한 이유 없이 이 사진가가 좋다. 지금보다 더 늙어서 그 사람 닮았다는 소릴 들어보고 싶다.

Photo by Jukerman , Leica R9, MoMA Collection

영문학을 전공하시고 에디터로 한참 동안 활동하신 것으로 알고있는데, 처음 사진을 접하게 된 계기나 사진에 좀 더 집중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을 채우기 위해 사진을 도구로 사용하기로 한 것이 계기겠다. 여전히 사진이라는 것이 전공해야 되는 것이라고 애써 믿지 않으려는 글쟁이다. 다만 사진은 내가 스스로 세운 약속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 세 시간은 사진을 찍기 위해 돌아다닌다. 반드시 혼자서 다닌다. 그러다 보니 사진도 글만큼이나 어렵다고 느끼게 됐다. 그러니 더욱 오기가 난다. 바람이라면 내 글과 내 사진이 둘 다 하나의 공간에서 완벽한 밸런스를 지니면서 공존하게 되는 것이다.

디지털 카메라, 다른 필름카메라들과 비교해서 로모그래피 카메라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기계에 지나칠 정도로 의존하려는 기색이 엿보일 때마다 다른 카메라들을 접어두고 로모를 들고 나간다. 건방을 떨어대는 내가 무릎 꿇고 고해성사하는 것의 대안이 로모 카메라이다. 물론 그렇게 속죄하고 애원하더라도 쉬이 복음이 전해지지는 않는다. 그게 로모의 매력이다. 전부 비우고 버리고서야 로모는 사진을 보여준다. 내 의도가 아닌 또 다른 차원으로 말이다.

The Future is Analogue! 라는 로모그래피의 모토가 있는데요. 쥬커맨님이 생각하는 아날로그 필름사진의 미래, 더 넓게는 아날로그의 미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디지털의 고향은 결국 아날로그라고 본다. 이것에도 생명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회귀본능처럼 디지털은 아날로그를 닮으려 애쓸 거라고 본다. 불행하게도 둘은 절대로 합일을 이루지는 못 할 것이다. 둘이 엇비슷해 보일지는 몰라도 절대로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왜? 재미없어지잖아. 다양해야 재미있지. 왜 굳이 같아질 거라고 믿는 걸까? 결국 아날로그는 늘 과거이자 현재이자 미래일 것이다. 그러니 로모그래피의 모토는 틀린 말이다. Too를 문장 끝에 붙이도록 하라.

Solomon R. Guggenheim Museum Collection

앞으로 아날로그 필름 사진을 즐기려는 사람들에게 조언하고싶은 게 있다면?
“필름 사진은 생각을 많이 하도록 요구한다. 중요하면 할수록 늘 그에 걸 맞는 결과물을 남겨준다는 점이 매력적이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다만 필름 사진은 여전히 디지털 사진과는 많이 다른 사진을 남겨준다. 지금의 그 모습이 디지털 사진이 꿈꿔온 미래의 사진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구닥다리 필름 카메라라고? 천만의 말씀이다. 필름은 이미 완성된 사진의 바탕이거니와 지극히 미래지향적이다. 그러니 계속 찍어라. 충분히 찍고 나서 조언을 요구하든가 하라.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까.

Jukerman A. Bahk
Lomohome: Jukerman
Blog: http://www.jukerman.com
Facebook: http://www.facebook.com/jukerman
Email: humpty@naver.com

Photo by Jukerman

2011-02-18 #사람 #photographer #lomoamigos #lomoamigo # # #jukerman # #jukerman-a-bahk

4 덧글

  1. afterain
    afterain ·

    머리가 아닌 가슴에 와 닿는 말씀들이 많아요.
    멋진 사진들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

  2. kimdaehyun
    kimdaehyun ·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 세 시간은 사진을 찍기 위해 돌아다니신다는 말씀이 와닿네요.
    짧고 강렬한 한마디 한마디 말씀들,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3. jukerman
    jukerman ·

    나만의 즐거움을 위해서 하루 3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은 꽤 행복한 노동이긴 합니다.
    하지만 나머지 시간의 많은 부분이 내가 아닌 내게 뭔가 일을 해주길 원한 사람들의 사진을 위해 소비해야 한다는 것은 힘든 부분이라고 여기고 있어요.

  4. kimdaehyun
    kimdaehyun ·

    그 3시간을 위해, 나머지 시간 만큼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시간이든 30분이든,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좀 더 노력해야 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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